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
고등학생이 해석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라 출처를 알 수 없네요. 아쉽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많이 접하기도 하고 써보기도 했지만, 유래를 알게 되어 흥미로웠습니다. 한 명은 살 수 있는데도 굳이 살려 하지 않고 끝까지 모두 목숨을 걸었다는 게 감동적이네요.
<<요약>>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프랑스 도시 칼레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백년 전쟁 중에 영국에 의해 포위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먹을 것이 떨어지자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항복 협상 중에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만약 칼레의 지도자 중 6명이 목숨을 내놓는다면 나머지 칼레 시민들은 살려주겠다고 제안했다. 가장 먼저 성인 피에르가 나섰고 뒤 따라 6명이 더 나섰다. 그들은 총 7명으로 에드워드 3세가 제안한 6명을 넘어서는 숫자였으므로 한 명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장터에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람을 처형당할 6명에서 제하자고 했다. 다음날 장터에 6명이 나왔으나 성인 피에르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7명이 나섰지만 한 명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선 사람들의 용기를 꺾을까 염려해 자살을 택한 것이다. 성인 피에르는 그렇게 자살하고, 나머지 6명은 약속대로 처형당할 위기였으나, 에드워드 3세의 왕비가 에드워드에게 간청함으로써 그들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때 칼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사람들을 기리는 작품이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고, 이 정신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이다.
<<해석 전문>>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부와 권력의 특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개념을 의미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프랑스의 도시 칼레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은 오귀스트 로댕의 가장 유명한 조각 중 하나로, 1889년에 완성되었다. “칼레의 시민들” 조각상은 백년 전쟁 기간 중 영국 해협 쪽 프랑스의 중요한 항구도시인 칼레가 1년여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을 때인 1347년의 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칼레를 장악했을 때, 프랑스의 필립 6세는 칼레를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내라고 명령했다. 필립 6세의 칼레 장악은 실패했고 굶주림으로 인해 결국 칼레는 항복을 위한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에드워드는 만약 칼레의 최고 지도자들 중 아무나 6명이 에드워드에게 항복한다면-아마 처형당할 것인데- 칼레의 나머지 시민들은 살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에드워드는 그 6명에게 거의 벌거벗은 채로 아마포를 그들의 목에 두르고 도시와 성의 열쇠들을 갖고 걸어 나오길 요구했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가 요구하자, 칼레의 일곱 세력가들은 다른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들의 목숨을 에드워드 3세에게 줄 수 밖에 없었다. 그 마을 지도자들 중 가장 부자인 사람 중 한 명인 세인트 피에르(성인 피에르)가 인질이 되기 위해 자진한 첫 번째였다. 그는 말했다. “칼레의 시민들이여! 용기를 갖고 나와라.”
그러자 바로, 영웅들 6명이 더-칼레의 시장 앤드류 단드레, 장 드 피에네, 칼레의 가장 부유한 사람인 쟈끄 드 뷔상뜨와 그의 아들 피에르 드 뷔상뜨, 그리고 성인 피에르의 동생- 또한 성인 피에르를 따랐다. 결국 7명이 나왔다. 한 명은 빠져야 했다. “내일 아침에 장터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가장 늦게 도착하는 사람을 뺍시다.”라고 성인 피에르가 제안했고 모두 동의했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밤은 더욱 더 길어졌다. 다음 날, 6명이 아침 일찍 모였다. 그러나 성인 피에르는 오지 않았고 칼레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해 궁금해했다. 아무도 나오지 않더라도 그 만은 반드시 나타날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나올 수 없었다. 그는 죽음을 택한 사람들이 용기를 꺾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칼레의 명예를 위해 자살했다.
하지만 6명이 처형될 위기에 놓인 마지막 순간에 에드워드 3세의 임신한 부인이 용감한 인질들을 살려줄 것을 간청했다. 그녀는 사형 선고가 태어날 아이에게 불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설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 결과, 영국 여왕의 간섭으로 그들은 목숨을 건졌다. 성인 피에르와 여섯 영웅들의 용감한 행위 덕분에, 그들은 백년 전쟁 동안 칼레를 영국의 지배로부터 구해낼 수 있었다.
550년 후에, 1895년에 칼레 시는 용기와 영웅적 자기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칼레의 시민들”이라는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칼레시는 오귀스트 로댕에게 조각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10년 동안 그의 모든 에너지를 동상에 쏟았다. 그 작품이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교훈을 가르쳐 준다.
<<원문>>
Noblesse Oblige
Noblesse Oblige means the idea that people who have special advantages of wealth and power should help other people who do not have these advantages. It is derived from the anecdote of the French city of Calais.
Rodin’s “The burghers of Calais” is one of the most famous sculptures by Auguste Rodin, completed in 1889. It serves as a monument to an occurrence in 1347 during the Hundred Years’ War, when Calais, an important French port on the English Channel, was under siege by the English for over a year.
The story goes that England’s Edward Ⅲ laid siege to Calais, while Philip Ⅵ of France ordered the city to hold out at all costs. Philip’s siege failed, and starvation eventually forced the city to parley for surrender.
Edward offered to spare the people of the city if any six of its top leaders would surrender to him, presumably to be executed. Edward demanded they walk out almost naked, wearing nooses around their necks, and carrying the keys to the city and castle. As King Edward Ⅲ of England urged, seven powerful men of Calais had to give their lives to the king in order to save other citizens. One of the wealthiest of the town leaders, Saint Pierre was the first to volunteer to be a hostage, he said “Burghers of Calais! Come out with courage.”
Just then, six more heroes—the mayor of Calais, Andrieu d’Andres, Jean de Fiennes, Jaques and Pierre de Wiessant—the richest man of the city, his son and Saint Pierre’s brother also followed him. At last seven people came out. One person had to be excluded. “Let’s meet at the market place tomorrow morning and exclude the last person to arrive,” suggested Saint Pierre, everyone agreed.
Their painful night became longer and longer. The next day, six people gathered early in the morning. However, Saint Pierre didn’t come, everyone in Calais wondered about him. Though everyone did not come out, he was one who never failed to show up. He could not come out because he had already been dead. He committed suicide for the glory of Calais lest people who chose to die should weaken their courage.
However, at the last moment the burgers were on the verge of being executed, King Edward Ⅲ’s pregnant wife, who was afraid of the legend that stated the threat of a death sentence would bring bad luck to a child to be born, pleaded for the lives of the brave hostages. As a result, their lives were spared by the intervention of England’s Queen. Thanks to St. Pierre and six heroes’ brave deed, they could extricate Calais from the siege of England during the Hundred Years’ War.
After 550 years, the city of Calais decided
to build the statue of “The burghers of Calais” in memory of bravery and heroic
self-sacrifice in 1895. The chity of Calais asked Auguste Rodin to creat a
sculpture. He put forth all his energy to the statue for ten years. The work is
Rodin’s “The burghers of Calais”. This story teaches us the lesson of “Noblesse
Obli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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